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그는 1931년 3월 해남공립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김홍배·오홍탁 등의 지도를 받아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3년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동회는 전남지역의 농민·어민·노동자·인텔리를 포함한 사회주의 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을 목적으로 사무부(事務部)·조직부(組織部)·조사부(調査部)·구원부(救援部)의 조직을 갖추고 기관지로서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였다. 그는 1933년 2월 천석출(千石出) 등의 동지와 함께 청년반을 결성하고 동년 음력 9월에는 소작료 감면을 요구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34년 2월 중순 일경에 붙잡혀 그는 1936년 12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6. 12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
- 동아일보(1934. 9. 10)
- 조선일보(1934. 9. 7, 1936.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