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1919년 4월 6일 해남읍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해남공립보통학교 학생인 김규수(金奎秀)가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여, 4월 1일 보통학교 기숙사에서 김한식(金漢植)·신건희(申健熙) 등 같은 동료 학생들에게 국내외 정세와 민족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해남 읍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제안하였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찬동하며 진행되었다.
이때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던 이재실은 4월 3일 그들로부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즉시 이에 찬동하고 운동계획에 적극 참가하였다.
4월 5일 이재실 등은 보통학교 기숙사에 모여, 다음날인 4월 6일 해남읍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모든 준비를 서둘렀다. 양목(洋睦)과 물감 등을 사다가 기숙사에서 대형 태극기 90여 개와 종이 태극기 100여 개를 제작하였다. 또한 이들은 직접 독립선언광고문을 작성, 인쇄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6일 오후 1시경, 이재실을 비롯한 주도자들은 장꾼들에게 준비한 태극기와 격문 등을 나눠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에 시민들도 적극 호응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이 넘었으며, 2시간 동안 해남 읍내의 각처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는 시위대의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고창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이해 5월 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16∼61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60∼162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90·29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