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1919년 4월 11일 해남읍(海南邑)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일제의 침략정책에 반대하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희망하던 청년 김동훈(金東勳)에 의해 계획되었다. 김동훈은 4월 1일 같은 마을의 청년 안정석(安正錫)·안유석(安儒錫)과 만세운동을 의논하는 한편, 자신의 집에서 김경두(金璟斗) 등과 함께 소형 태극기 8백여 장과 대형 태극기 6개를 제작하였다.
4월 11일 정오 경 김동훈이 동료들과 해남로(海南路) 큰 길거리에서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어 신호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군중들이 모두 독립만세를 부르며 모여들었다. 이때 선화인도 해남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여기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해남읍 홍교(虹橋) 부근에서 김성철(金相喆)과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군중을 이끌었다.
선화인은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長興支廳, 1919. 4. 17)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1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