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황두일(黃斗一) 의진에 가담하여 전남 해남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나아가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제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박화선은 이같은 시기인 1908년 강자선(姜自仙)·이봉기(李鳳奇) 등과 더불어 황두일의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황두일 의병장의 지휘 아래 전남 해남군 송종면(松終面) 미황사(美黃寺)를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이들의 의병활동을 관헌에게 밀고한 같은 면 삼마동(三馬洞)에 거주하는 부일협력자 최덕관(崔德寬)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08년 음력 12월 22일 동지들과 함께 강모(姜某)를 부장(副將)으로 추대하고, 다음날 23일 새벽 최덕관의 집에 들어가 그를 결박하여 동리 앞 밭으로 끌고가 총살, 처단하였다. 이 사건으로 붙잡힌 그는 동지 강자선·이봉기와 같이 1910년 9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