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1919년 전남 해남읍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남읍에서는 4월 6일 나이 어린 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어 시민들의 마음을 뜨겁게 격동시킨 바가 있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김흥룡은 김동훈(金東勳), 안정석(安正錫), 안유석(安儒錫) 등의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800여 매와 대형 태극기 6개를 만드는 등 거사를 준비하였다. 또한 4월 6일에 있은 보통학교 학생들의 장거(壯擧)를 찬양하며 군민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이와 같이 4월 3일부터 11일까지 준비를 갖춘 후 마침내 4월 11일 주동 인사들은 해남로의 큰거리에 집결하여 큰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삽시간에 군중들이 가세하였고 김흥룡이 당목으로 만든 큰 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시위행진에 돌입하였다. 도중 해남보통학교 학생들이 다시 시위대열에 합류하였고 이를 본 군민들이 감격하여 모여들므로써 시위대는 1,0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얼마후 일경의 무력 저지로 대열은 무너지고 그를 비롯한 주도 인사들은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19년 5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일본과 싸운 해남사람들의 이야기(해남문화원, 1996) 20面
- 判決文(1919. 5. 17.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18·619面
- 全羅南道誌(全羅南道誌編纂委員會, 1993) 第8卷 11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