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08년 1월 경남 함양군(咸陽郡)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며 동지(同地)에잠복하던 중, 동년 1월 14일 일본 순사의 총에 맞아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暴徒 逮捕에 關한 件(1908. 8. 6), 暴徒에 關한 編冊
관리번호 | 950982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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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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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盧三 |
이명 | 없음 | 성별 | 남 |
생년월일 | 사망년월일 | ||
본적 |
운동계열 | 의병 | 포상년도 | 2005 | 훈격 |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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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월 경남 함양군(咸陽郡)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며 동지(同地)에잠복하던 중, 동년 1월 14일 일본 순사의 총에 맞아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순번 | 성명 | 이명 | 출신지 | 관련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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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박노삼 | - | 미상 | 후기의병 | |
본문 |
1874년 출생하였으나, 출생지는 알 수 없다. 경상남도 함양(咸陽)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1905년 일제는 을사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였으며, 통감 정치를 시행하여 고종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고자 하였다. 이에 맞서 고종은 헤이그로 특사를 파견하였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강제 퇴위되었다. 또한 일제는 1907년 7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그 결과 해산 군인이 의병에 가담하여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이 확산되었다.이런 상황 속에서 경남 함양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참여 의병부대와 활동 내용을 알 수 없다. 1908년 8월 4일 오전 2시경 함양군 충백내면(沖栢內面)에서 남원경찰서 소속 순사대와 전투를 벌이다 사망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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