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9월 경남 함양군(咸陽郡) 마천면(馬川面)에서 경남창의대장(慶南倡義大將) 박동의의진(朴東義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경남 함양군의 지리산 일대에는 충청도ㆍ전라도ㆍ경상도에서 몰려온 여러 의병부대가 활동하였다. 도선봉(都先鋒) 이학로(李學魯), 후군장(後軍將) 장자만(張子滿), 중대장(中大將) 황내청(黃內靑), 좌선봉 이만영(李萬永), 중군장(中軍將) 양문칠(梁文七) 등으로 편제된 박동의의진도 지리산을 근거지로 활동하였다.
1908년 9월 함양군내 일본군 입석수비대(立石守備隊)는 박동의의진의 격문이 함양군 마천면 각 마을에 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천면 창촌(倉村) 동장 김찬언(金贊彦)과 김순오가 의평촌(衣坪村) 동장에게서 격문을 받아 양전(陽田) 동장에게 전달한 사실을 탐지한 것이다. 박동의의진의 격문 내용은 '세금납부의 거부, 탐관오리의 징치(徵治), 일본 군경 위치의 의소(義所) 통보, 친일세력 처단의 협조와 의병 참여의 호소' 등이었다.
김순오는 박동의의진의 격문 내용을 마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다른 마을에 격문을 전달하려다 입석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5일 일본군에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陣中日誌(토지주택박물관, 2010) 제2권 521~524, 553~5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