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1919년 3월 5일 서울 남대문역(서울역) 앞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서울 경신학교(儆新學校)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용석은 오세창(吳世昌)·박주풍(朴疇豊) 등과 함께 학생단의 제2차 만세운동이 있음을 전해 듣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서울역 시위에 참가하였다.
조용석은 학생·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남대문 쪽을 향해 행진하였다. 이때 길 가던 사람들도 이 행렬에 뛰어들어 5천여 명이던 시위군중은 어느덧 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행렬이 남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중이던 일본 경찰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저지선을 뚫고 계속해서 행진하였다. 이때 시위를 주도하였던 강기덕과 김원벽 등 50여 명이 일본 경찰에 붙잡혔지만, 시위행진은 계속되었고 보신각까지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더욱 증강된 경찰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저지하자 시위군중들은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중상을 입고 조용석을 비롯한 75명이 종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5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186·193面
- 豫審終結決定書(京城地方法院, 1919. 8. 30)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第11輯 10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第18輯 256∼268面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19. 11. 6)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58∼82·95∼9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07·142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第17輯 26∼2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