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면(郡北面) 군북(郡北) 천변(川邊)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조정래(趙正來)·조성규(趙聖奎)·조경식(趙瓊植)·조형규(趙炯奎) 등에 의하여 계획되었는데,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해 놓고 인근지역에 이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20일 오전 9시, 군북면 동촌리(東村里)의 신창학교(新昌學校)에서 50여 명의 학생들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이를 신호로 군북 장터에 있던 조성기도 시위군중과 함께 일제히 궐기하였다. 오후 1시경, 3천여 명의 대대적인 시위군중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군북 경찰주재소의 경찰과 이곳에 파견되어 있던 포병대대 병력 16명이 출동하여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열을 해산시켰다.
오후 5시경, 5천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은 다시 궐기하여 경찰주재소로 몰려갔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분노한 시위군중은 투석으로 대항하여 유리창과 벽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일본 군경은 잔인하게도 시위대열에 조준사격을 감행하여 21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조성기도 적의 흉탄을 맞고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咸安抗日獨立運動史(咸安文化院, 1998) 65·233∼235面
- 趙已守 戶籍騰本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561·59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