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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160
성명
한자 姜龍雲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0 훈격 애족장
1933. 1월 경남(慶南)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훈도(訓導)재직중(在職中) 김두영(金斗榮), 정두명(鄭斗明)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제국주의 교육타도, 조선인 본위의 교육실시 등을 목적으로 교육노동자협의회(敎育勞動者協議會)라는 결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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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1931년 진주사범학교 특과(特科)를 졸업한 후 사천공립보통학교(泗川公立普通學校) 및 명지(鳴旨)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던 중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하여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한편 일제를 이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 1월 경남 진주에서 동지 김두영(金斗榮) 등과 모임을 갖고 각 부문운동별로 산업별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연계투쟁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중에서 강용운, 김두영 등은 교사였던 관계로 비밀결사 교육노동자협의회(敎育勞動者協議會)를 결성하기로 하고 생활권 옹호,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 획득, 제국주의 교육타도, 조선인 본위의 교육실시 등의 강령을 논의하였다. 이후 3월 28일 마산만의 선상(船上)에서 강용운을 비롯한 김두영·이화준(李華俊)·정두명(鄭斗明) 등이 회합하여 반전의식(反戰意識) 고취, 교내 일본어 상용 반대, 소위 국민정신 작흥(作興) 반대 등 35개항의 행동강령을 채택한 후 교육노동자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중앙부 책임 김두영, 조직부원에 이화준 등의 부서를 정하고 경남지역을 중부, 동부, 서부로 나누어 각기 책임지역을 분담하는 등 조직의 편제를 갖추었다. 보통학교 교사인 강용운 등은 학생들에게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시키는 한편 농촌경제의 절박한 상황, 보통교육의 학자(學資) 부족, 적령아동의 격증, 수업료 미납현상 등 식민지 교육제도의 모순을 알려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이 일제에 발각됨으로써 1933년 8월경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1934년 7월 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4. 7. 5. 釜山地方法院)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1976) 1422·1424面
  • 東亞日報(1933. 12. 12, 12. 13, 1934. 4. 22, 6. 28, 6. 30)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강용운 - 경남 함안 -
본문
1911년 7월 22일 경상북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소포리(小浦里)에서 태어났다. 군북공립보통학교(郡北公立普通學校)를 거쳐 진주사범학교(晉州師範學校) 특과(特科)를 1931년 3월 졸업하고 사천(泗川) 공립보통학교 및 명지(鳴旨) 공립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독립운동에 뜻을 둔 교사를 규합하여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하면서 국내외에 정세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였다. 1933년 1월 경남 진주에서 김두영(金斗榮)·이화준(李華俊)·정두명(鄭斗明) 등과 적색교육노동자협의회(赤色敎育勞動者協議會)를 결성하기로 한 뒤 1933년 3월 28일 마산만의 배 위에서 강령을 채택하고 조직을 정비하였다. 협의회의 중앙부 책임 및 재정부 김두영, 조직부 김두영, 교양부 이화준, 선전부 이명상(李明祥)으로 구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중앙부서 아래 경남을 지역별로 동부(부산), 서부(진주), 중부(함안·군북)로 나누어 연락 체계를 구축하고 각 지방에 소모임을 두기로 하였다. 강령은 생활권 옹호,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제국주의 교육 타도, 프롤레타리아 교육 건설,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 실시, 무산 계급의 완전한 해방 등이었다. 학생들에게 사회과학 서적을 돌려 읽게 하면서 농촌 진흥 운동 등을 내세운 당시의 총독부의 선전과는 달리 조선의 농촌 경제가 파탄한 실상을 직시하게 하였다. 또한, 보통교육에 필요한 학자금 부족, 수업료 미납 현상, 적령 아동의 격증 등의 현실을 통해 식민지 교육 제도의 모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인식시킴으로써 학생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33년 7월 부산 제2상업학교의 비밀결사인 사회과학연구회 회원들이 체포된 것을 계기로 그해 8월 경남경찰국이 적색교육노동자협의회가 활동한다는 것을 탐지하고 관련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부산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받았다. 공판이 몇 차례 진행되면서 이를 관람하기 위해 가족들과 일반 친지, 기자들이 몰려들어 법정을 가득 채웠고 이에 정사복 경관이 법정을 에워싸는 등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34년 7월 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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