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부터 1908년까지 경북 예천(醴泉)ㆍ문경(聞慶) 등지에서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고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이강년은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창의하여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에서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3월 재봉기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북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8년 8월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 이후 제천(堤川)에서 민긍호부대(閔肯鎬部隊)와 합류하여 의병진을 재편성하였고, 8월 19일 주천(酒泉)으로 이동하여 40여 의병진의 추대로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이 되었다.
임영수는 1907년 8월 임달실(林達實)의 권유에 따라 이강년의진의 포군으로 의병 40여 명과 함께 문경 갈평리전투(葛坪里戰鬪)에 참가하여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1908년 음력 11월 13일 예천군 노곡동(蘆谷洞)과 중리동(中里洞)에서, 12월 21일에는 안동군 풍남면(豊南面) 병산(屛山)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2월 5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및 폭동죄로 징역 5년을 받고 1년 7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뒤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09. 2. 5)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