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에서 한족회(韓族會) 회원 및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서기관(書記官)으로 경북 청송(靑松)에서 군자금과 동지를 모집하였다.
한족회는 1919년 1월 서간도(西間島) 유하현 삼원포(三源浦)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부민단(扶民團)의 사업과 활동을 계승한 조직이었다. 1919년 5월에는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고 한인 자제들에 대한 군사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11월에는 독립군 부대인 서로군정서를 조직하였다. 서로군정서는 주로 국내와 만주에서 밀정 및 보민회(保民會) 회원을 처단하고 재정은 한족회원의 의무금으로 유지되었는데, 국내의 경우 경상도 지방에서는 재정 후원을 위한 비밀결사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서화는 1920년 2월경 한창근(韓昌根)과 함께 경북 청송군 파천면(巴川面) 중평리(中坪里) 등지에서 군자금 및 동지를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國外情報(1920. 5. 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7)
- 不逞鮮人 狀況에 關한 件(1921. 3. 2), 鴨綠江 附近 不逞鮮人의 狀況(1921. 3.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7)
- 刑事事件簿
- 執行原簿
- 受刑人名簿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 1921. 3. 24)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 192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