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우택락은 1920년 음 4월경,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서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吽哆敎)의 8인조에 가입, 독립운동을 위해 치성비를 납부·모금하였다.
1901년 강일순(姜一淳)이 세운 흠치교는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교의 조직은 교주 차경석(車京錫) 아래에 60인의 고문이 있었으며, 고문 아래에 6인조-12인조-8인조-15인조 등의 조직을 갖추고, 치성비를 내어 일부는 제사 비용으로 쓰고, 잔금은 전북 정읍에 있는 본부에 보내져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 교도들은 1924년에 국외의 독립운동단체와 호응하여 일제히 일어나 독립운동을 개시하여 조선독립의 희망을 이룰 것이라고 믿고, 교도를 조직하고 독립자금의 모집에 노력하였다.
우택락 역시 치성비를 내고 1924년에 조선이 독립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1920년 음 7월경 청송군 진보면 진안동 박근수(朴根洙) 외 14명에게 입교할 것을 권유하여 15인조에 가담시켰다. 이렇게 교세 확장과 독립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공소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6년 6월 20일 창립된 진보청년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1. 11. 26)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安東支廳:1921. 4. 22)
- ·時代日報(1926.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