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청송(靑松) 출신이다.
1906년 5월 영천(永川)을 중심으로 정용기(鄭鏞基)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이 형성되자 진보(眞寶) 지방의 소모책임을 맡았다.
그후 정용기의 체포 및 의진해산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용기가 부친 정환직(鄭煥直)의 주선으로 석방되어 1907년 8월 의진을 재구성하자 다시 입대하여 신성(薪城)·청송(靑松)·자양(紫陽) 등지에서 적과 접전하여 전과를 올렸다.
1907년 10월 입암(立岩) 전투에서 정용기가 순국하자 그의 부친 동엄 정환직(東 鄭煥直)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신녕(薪寧)·의흥(義興)·안동(安東)·청송·청하(淸河) 등지에서의 대소전투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2월 11일 정환직이 또 체포되어 순국하자 최세한(崔世翰)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동부의진의 서종락(徐鍾洛) 의병장과 함께 활약하였다.
1908년 2월 의병장 서주일(徐周一)의 휘하에서 총기를 휴대하고, 이재원(李在元)으로부터 소 1필을, 박태래(朴泰來)로부터 70여 명의 급식을 제공받는 등 활약하다가 체포되어 1910년 2월에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산남의진유사 376·378면
- 산남창의지 상권 59면
- 영양문헌록 982면
- 재판문(대구지방재판소 1910. 2. 16)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