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경북 진보군(眞寶郡) 등지에서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陳)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신돌석은 1908년 1월 이후 평해(平海) 독곡(獨谷)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3월에는 대규모로 투입된 일본군에 맞서기 위해 안동(安東)ㆍ울진(蔚珍)ㆍ삼척(三陟)ㆍ강릉(江陵) 등지의 의병과 연합하여 춘양(春陽)ㆍ황지(黃池)ㆍ소봉동(小鳳洞)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이후 울진 도곡(道谷), 평해 한곡(寒谷)ㆍ희암(喜巖)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박용태는 경북 진보에서 신돌석의진에 참여한 이후 1908년 음력 3월 17일경 이참봉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진보군 남면(南面) 감곡동(甘谷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12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5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