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청송(靑松) 출신이다.
1906년 3월 산남의진 정용기(鄭鏞基) 의병장의 휘하로 입대하여 활약하였다.
1907년 10월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하고 이어서 의병장으로 추대된 정환직(鄭煥直)마저 순국하자 산남의진은 흩어져 각기 활약하게 되었다.
1908년 6월 박신재(朴新材)와 그밖에 수명과 더불어 총검을 휴대하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즉 경상북도 청하(淸河) 세목동장(細牧洞長)으로부터 20원을 군자금으로 모금하고, 그 후 귀가하여 있던 중 1908년 8월 3일에는 일본측의 밀정으로 활약하던 청하군의 소사(小事) 정말범(鄭末凡)을 살해하였다.
이 일이 적에게 적발되어 일수비대에 의해 영일군 관학산(冠鶴山)에서 체포되었다.
9월 1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암살 및 강도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9월 29일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 당하였으며, 10월 20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소위 칙령 제23호에 의하여 징역 12년형으로 감형 받았으며, 다시 1916년 소위 칙령 제104호에 의하여 징역 9년형으로 감형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대구지방재판소 판결문 (1908. 9. 4)
- 대심원 판결문 (1908. 10. 20)
- 대구공소원 판결문 (1908.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