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만주와 러시아에서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일제에 맞서 싸우다 체포되어 희생당했다. 유진구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4년 4월 만주에서 간민회(墾民會)의 부속단체 동제회(同濟會)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간민회는 1913년 2월 이동춘(李同春), 김약연(金躍淵) 등이 간민교육회를 토대로 설립한 한인자치기관으로 한인들의 민족교육을 추진함과 동시에 한인들의 법적지위 향상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함으로서 간도지역 한인사회의 형성을 가속화하였다. 또한 동년 8월에는 연길현(延吉縣)에서 국치기념일(國恥紀念日) 행사를 주도하였다. 유진구는 1916년 12월부터 1918년까지 만주 연길현 용지사(勇智社) 육도구(六道溝)에 건립된 교향학교(敎鄕學校)에서 교사로 활동하다 노령 시베창으로 건너가 민족교육에 종사하였다. 1920년 초 유진구는 솔밭관[松田關] 한족공산당의 집행위원 및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는데, 솔밭관 한족공산당은 러시아 내전의 와중에서 연해주 주둔 일본군과 러시아 백위군과 맞서 싸웠으며, 러시아 공산당과 적군을 지지하였다. 이후 유진구는 1922년 초 추풍(秋風)에서 솔밭관 한족공산당원을 탄압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군 정찰대에 체포되어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豆滿江方面 中國領 狀況彙報(1914. 9. 1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4) ·排日思想을 抱持한 朝鮮人 發着郵便物 取締의 件(1918. 6.13) ·獨立新聞(1923. 3. 14) ·現代史資料(강덕상) 제27권 147면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3권 423면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姜萬吉·成大慶, 1996) 3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