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철원(鐵原)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동년 8월 강대여(姜大呂) 신원균 박건병 등과 철원 애국단(鐵原愛國團:일명 大韓獨立愛國團)을 조직하고 10월 3일을 기하여 "대한민국 정부 성립 축하회 선언서"를 배포하여 제2의 만세시위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이어서 그는 애국단 대표로서 박건병과 함께 상해로 파견되었다.
그는 동년 11월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강원도 철원군 조사원에 임명되었다. 1922년에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주비위원회가 조직되는 등 독립운동 선상에 불화가 일어나자 그는 노령(露領)으로 가서 문창범 오창환과 같이 대한국민의회를 조직하는데 협조하였다고 한다.
1923년 봉천(奉天)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된 후, 한성은행에서 근무하였으며, 이곳에서 근무하던 중 의열단(義烈團)에서 파견된 구여순(具汝淳)의 방문을 받고 군자금 모집에 협조할 것을 약속하고, 한성은행 각 지점에서 본점으로 연말 송금이 있음을 알고 이를 습격하여 탈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구여순이 사전에 체포되어 이러한 사실이 탄로됨으로써 그도 일경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결국 1923년 2월 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 276 277 278 279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82 489면
- 동아일보(1924. 2. 29)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304 4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93 995 997 1005 1011 1012면
- 판결문(1924. 2. 28 경성지방법원)
- 조선민족운동연감 6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