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18세 당시부터 독립운동자들과 교유하여 비밀결사에 참여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에는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1921년 4월에는 상해(上海)로 건너가서 전차감독(電車監督)으로 근무하면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1923년 4월에 임시의정원 강원도 의원에 선출되어 1927년 1월까지 의정활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 7월에는 상해 3 1당에서 임시정부경제후원회(臨時政府經濟後援會)의 창립 총회가 열려 임시정부를 유지, 지원하기 위한 후원금을 확보하도록 하였는데, 위원장에는 안창호(安昌浩)가 선출되었으며, 그는 이유필(李裕弼) 임필은(任弼殷)과 함께 회계검사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1927년 3월에는 상해한인청년회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1929년에는 남경에서 민병길(閔丙吉) 윤기섭(尹琦燮) 성주식(成周寔) 신익희(申翼熙) 연병호(延秉昊) 최용덕(崔容德) 안재환(安載煥) 김홍일(金弘壹) 등과 함께 한국혁명당(韓國革命黨)을 조직하였다.
이 당의 목적은 사상의 정화와 독립운동 진영의 단결을 꾀하는 것으로 동시에 산하에 철혈단(鐵血團)을 조직하여 무력 행동대로 삼았는데 그 단장에는 안재환(安載煥)이 선출되었으며, 중견 단원으로는 김창화(金昌華) 나월환(羅月煥) 이건호(李建浩) 이영희(李英熙) 최경수(崔景洙) 등이 활동하고 기관지로 「우리길」을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며 단원 훈련과 교양에 이바지하였다.
1932년에는 당원이 약 40명 가량으로 늘어 상해와 남경 등에서 계속 활동하였는데 그는 당의 중견 간부로서 활약하였으며, 같은 해에 다시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1935년 11월까지 재직하였다.
1941년에는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처 관리과장으로 임명되어 근무하였으며, 1944년 6월 5일부터는 임시정부 군무부 총무과장 겸 선전부 간사로 임명되었고, 동년 9월에는 군사위원회 간사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45년 3월부터 다시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광복시까지 일생을 조국 광복에 이바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04 389 42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759·847·856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39·599·605·623·630·827·884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61 220 222 224 227 229 234 237 407 425 435 440 442 444 448 451 452 457 458 459 460 461 463 464 465 466 469 472 473 477 479 482 483 485 491 496 501 505 506 507 508 509 510 515 525 527 528 529 530 531 535 539 541 542 543 544 545 546 547 554 555 562 567 572 573 609 610 611 623 624 626 628 629 705 706 729 828 8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713·727·937·959·1009 102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309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4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7권 1390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41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42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1·443·51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0면
- 고등경찰요사 14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0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