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강원도 철원(鐵原) 사람이다.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의열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던 박용각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가한 뒤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가하였다.
그는 임시의정원의 강원도 의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21년에는 이승만(李承晩)의 대미위임통치청원(對美委任統治請願)에 반대하는 성토문(聲討文)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박용만(朴容萬)의 일가였던 그는 이후 임시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면서 1925년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의 후보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의열단에 가입하여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1926년 경 박용각은 의열단의 방침에 따라 중국군관학교(中國軍官學校)에 입교하여 조선인 간부훈련단에서 훈련을 마치고 활동하였다.
1927년 중국의 국공합작 체제가 붕괴되면서 의열단은 근거지를 북경으로 옮기고 레닌주의정치학교를 설립하는 등 좌익 노선을 표방하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공이후 남경(南京)으로 본거지를 이전하여 중국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조선혁명간부학교(朝鮮革命幹部學校)를 설립하여 1935년까지 청년투사들을 양성하며 중국 관내지역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그는 이러한 의열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16, 22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34面
- 要視察人名簿(國家報勳處) 240∼242面
- 大韓民國臨時政府議政院文書(國會圖書館) 45·47·51面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國會圖書館) 38·39·41·43·152·537面
- 鐵原郡誌(鐵原郡, 1922) 下卷 1946面
- 鐵原愛國先烈追慕碑(1967. 4. 15, 鐵原中 高等學校 교정 建立)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39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147·149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社會問題資料硏究會編) 第3輯 237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分冊 773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2輯 393·399面
- 民族獨立鬪爭史史料(海外篇) 21面
- 鄕土誌 鐵原 金化 平康(文化財保護協會鐵原郡支部, 1977) 59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4卷 197·418面
- 國外容疑朝鮮人名簿(總督府警務局) 24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