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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85
성명
한자 金完鎬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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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 1919년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 재무국장으로 활약타가 경성(京城) 지방법원 재판회부 (조선연합사 479-492

한국독립운동사 116, 항일순국의열사전 67)

○ 1920. 11. 30 징역 8개월 (매일신보 4673호)

○ 1921. 3월 14일 경성(京城) 복심원에서 공소기각 (동아일보 19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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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강원 철원(鐵原) 사람이다. 그는 1919년 8월 11일 철원군 동송면(東松面) 소재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김상덕(金相德)·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이용우(李用雨)·이봉하(李鳳夏)·박건병(朴健秉)·오세덕(吳世德)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지부인 철원군단(鐵原郡團)을 결성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신현구(申鉉九)가 서울에서 주도·결성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지원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전국적 조직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동단의 활동방향은 임시정부를 중심한 독립운동의 선전과 재정자금 조달,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역할 등이 주된 것이었다. 철원군단 역시 이같은 목적 하에 결성되었는데, 그는 철원군단의 재무과장(財務課長)으로서 활동했다. 이후 철원군단이 동단의 강원도 조직을 총괄하는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는 강원도단의 재무국장을 맡았다. 동년 9월 중순, 상해(上海) 임시정부에 파견한 신상완(申尙玩)으로부터 대한민국정부 수립축하 독립만세시위에 대한 계획을 전달받고, 동단에서는 이를 추진하여 동년 10월 10일 철원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결행했다. 이때 그는 만세시위에 따른 제반 준비를 주관했다. 그리고 강원도내 각군의 조직확대에도 힘을 쏟았는데, 1920년 1월 강원도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붙잡혀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91면
  • 판결문(1920. 12. 23 경성지방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완호 - 강원도 철원(鐵原) -
본문
1895년 8월 16일 강원도 철원(鐵原)에서 태어났다. 1919년 8월 11일 철원군 동송면(東松面) 소재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철원의 기독교계와 교육계 인사들이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지부인 철원군단(鐵原郡團)을 결성할 때 참가하였다.강원도 내에서 철원은 철도를 통해 일찍부터 신교육이 보급되었으며, 그와 함께 민족의식도 발달할 수 있었다. 철원은 강원도지역 만세운동의 선봉이 되었을 뿐 아니라, 청년 주체로 만세시위를 대중운동으로 성공시킨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였다. 철원의 만세운동은 박연서(朴淵瑞)를 비롯한 이후 철원군단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교회나 학교를 통해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철원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독립운동의 구체적 방도를 모색하던 중 철원 출신 김상덕(金相德)이 서울에서 내려와 대한독립애국단 소식을 알려오자 즉각 철원군단을 결성하였다. 철원군단의 결성 장소가 불교 사찰인 도피안사라는 점, 불교 승려 신상완(申尙玩)·탁능허(卓能處)·이운파(李雲坡) 등과 연결되었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기독교·불교의 종교 이념을 초월해 전개되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는 것이다.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남감리교 전도사 출신인 신현구(申鉉九)의 주도로 서울에서 결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단체였다. 본부를 서울에 두고 전국적 조직을 추진해 갔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임시정부 선전과 재정자금 조달,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역할 등을 수행하였다.처음 철원군단이 결성되고 재무과장(財務課長)을 맡다가, 철원군단이 강원도 조직을 총괄하는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승격하면서 강원도단의 재무국장으로 선임되었다. 강원도단은 도단장 아래 서무국·재무국·통신국·학무국·외교국원 등의 부서를 두었다. 강원도단은 대한독립애국단의 지단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활동도 활발해 속칭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으로 더 잘 알려졌다. 철원을 중심으로 강원도단은 강원도 지역의 각처로 조직을 확대해 갔다. 강원도단은 상동교회(尙洞敎會) 전도사 출신인 조종대(趙鍾大)의 활약으로 강릉(江陵)·양양(襄陽)·평창(平昌) 등지에 군단(郡團)을 설치하였고, 이어 울진(蔚珍)·삼척(三陟)·평해(平海) 등지로 확산되었다.철원의 도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불교 승려 신상완과 함께 임시정부 통합을 축하하는 만세시위를 계획 추진해 1919년 10월 10일 철원 대중들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서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들은 조직의 발각을 막기 위해 단원 가운데 박건병(朴健秉)·오세덕(吳世悳) 만을 표면에 내세웠다.거사 당일 임시정부 축하연설회를 열고 이어 거행된 만세시위 직후 이들을 상하이(上海)로 보내 시위 주체를 철저히 위장하였다. 이때 만세시위에 따른 제반 준비를 주관하였다. 이렇게 비밀활동을 전개하던 강원도단은 1920년 1월 친일 부호의 밀고로 발각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출옥 후 동아일보 철원지국장을 맡는 한편 1923년 『개벽(開闢)』 관동지사(關東支社) 총무로 철원을 무대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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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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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애국선열 추모비(철원) 강원도 철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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