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강원도 철원(鐵原) 사람이다. 기독교 전도사이던 그는 1919년 3월 10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鐵原) 읍내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철원은 강원도 내에서 서울과 가깝고 또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어느 지역보다 빨리 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철원에서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철원농업학교와 철원보통학교 학생들이 합세하여 3월 10일 5백여 명의 시위대가 군청에서 만세시위를 고창하였다. 거사일 저녁 무렵 곽진근은 시위대를 이끌고 친일파 박의병의 집으로 진군하여 "이완용이 이 집에 숨어 있음이 틀림없으니 내 놓으라"고 소리치고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과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인 11일에 이들 시위대는 철원역 부근에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전날에 이어 계속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제는 기마헌병을 동원하여 총을 쏘면서 시위대를 해산하였고 주동 인물을 체포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9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여 11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에 벌금 10원으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916∼92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