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강원 철원(鐵原) 사람이다.
그는 1919년 8월 9일 김철회(金喆會)·박연서(朴淵瑞)·박건병(朴健秉) 등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온 김재근(金載根)으로부터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설립 취지와 목적을 접하고 이틀 뒤인 동월 11일 철원군내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그 지부(支部)조직으로서 철원군단(鐵原郡團)을 결성하였다. 이때 이들은 부서도 정했는데 그는 서무과장(庶務課長)을 맡았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신현구(申鉉九)가 주도·결성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지원단체로서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 조직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동단의 활동 방향은 임시정부를 중심한 독립운동의 선전과 재정자금 조달, 국내 조직망을 통한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역할 등이 주된 것이었다.
이같은 목적 하에 결성된 철원군단은 곧 동단의 강원도 조직을 총괄하는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승격되었고, 이에 따라 부서도 확대·개편되면서 그는 강원도단의 서무국장(庶務局長)이 되었다. 동년 9월 20일, 그는 상해(上海) 임시정부에 파견한 신상완(申尙玩)으로부터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 독립만세시위에 대한 계획을 전달받고 만세시위의 추진을 주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대한민국정부수립 축하선언서〉를 인쇄하는 한편 서울에서 보내온 태극기 및 만국기 등을 배포하면서 대중규합에 힘을 쏟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동년 10월 10일 철원에서는 동 단원 박건병(朴健秉)·오세덕(吳世德) 등이 임시정부축하회를 열어 연설을 가준 후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는데 철원의 대중들은 상점(商店)의 문을 닫으면서 만세시위에 호응하였다. 이후 동단은 계속 조직을 확대해 갔는데, 1920년 1월말 동단의 강원도단이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붙잡힌 그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0. 12. 23 경성지방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98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53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