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6·10만세 운동을 주동하였으며 중동학교 3학년 재학중이던 1926년 5월 16일에 그는 김재문(金載文)·이동환(李東煥)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펴기로 뜻을 모으고, 동월 23일에 각학교 학생 50여명을 성북동 삼선호(三仙湖)에 모이게 한 뒤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인 목정(木町)을 습격하고 총독부를 때려부수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정세임을 판단하고 융희황제 인산일인 6월 10일에 격문을 뿌리고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이들은 거사를 위해 격문을 기초하는 한편 등사판을 빌어 격문 5천매를 인쇄하였다. 그리고 각기 1천매씩 나누어 갖고 이를 배부하였다.
국장당일에 그는 동대문 밖 숭인동에서 국장행렬의 통과가 끝날 때를 기다려 봉송(奉送)하는 군중 속에서 격문을 살포하는 동시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그는 현장에서 일경에 붙잡혀 곧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후 6월 24일에 6·10만세운동 학생주동자 10명과 함께 기소되어, 1927년 4월 1일에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576·57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73·174·180·190·197·200·204·206·214·220·223·225·227·231·1485·1487·1488·1489면
- 판결문(1926. 11. 17 경성지방법원)
- 판결문(1927. 4. 1 경성복심법원)
- 기려수필 377·378·380면
- 동아일보(1926. 6. 26, 10. 6, 10. 8, 11. 3, 11. 4, 11. 5, 11. 12, 11. 18, 1927. 4. 2, 9. 20)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356·357·358·365·366·368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172·180·307·429·5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