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1917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도전(早稻田)대학에 재학 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년 8월 만주에서 길림군정서(吉林軍政署)특파원으로 파견된 이채우(李採雨)·김영순(金永淳)과 협의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동년 10월 일경에게 체포되었으며, 1921년 2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1925년에 신민부(新民府) 중앙간부로서 동지 규합과 군자금 조달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상해로 갔다가 광동군관학교(廣東軍官學校)를 졸업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으며, 길림성 조주현 양자하(吉林省鳥珠縣亮子河)에서 고려국민당(高麗國民黨) 중앙검사부 집행위원으로서 동지규합 및 무장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1929년 1월 하얼빈(哈爾濱)에서 일경에게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동년 4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었으며,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중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동년 10월 6일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3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112·11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337·3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19면
- 동아일보(1929. 4. 13, 4. 25, 10. 20)
- 제적등본(1929. 10. 6 신의주형무소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