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여 갔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1907년 8월부터는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거의했던 의병진과 함께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최윤보는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이기준(李己準) 의진에 참여하여 국권회복에 나섰다. 그러나 1909년 5월 전북 용안군(龍安郡) 이동면(二東面)에서 동료 의병들과 함께 군자금을 수합하는 등 활동하던 중 용안주재소 및 강경경찰서 일본 순사들의 공격을 받고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4輯 398·39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