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1924년 1월 1일 전북 익산군 익산읍(益山邑)에서 조용관(趙容寬) 등 9명이 회합하여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결사하고 소작 및 노동문제 등을 연구하는 한편 회원 60여명을 규합하고 《민중운동(民衆運動)》이란 잡지를 발간하며 활동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1925년 4월 8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검사의 공소로 1925년 12월 17일 대구복심법원을 거쳐 1926년 4월 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7년 6월 28일 신간회(新幹會) 익산지회(益山支會) 창립시 "신간회운동은 독립운동의 수확기(收穫期)이다"라는 격문을 제작 살포하다가 붙잡혔다. 그는 1927년 8월 31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중외일보(中外日報) 이리지국장(裡里支局長)으로 재직하던 1928년 4월 28일 전북기자단정기대회(全北記者團定期大會)를 임실청년회관에서 개최할 때 개회사를 사전 검열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경으로부터 회의진행을 방해받고, 동아일보(東亞日報) 전주지국(全州支局) 기자 김지수(金智洙) 등과 같이 붙잡혔으나 1928년 5월 21일 불기소로 출감하였다.
그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28년 7월 7일 다시 붙잡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1930년 12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34년 6월 30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483·48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119·120面
- 東亞日報(1927. 9. 3)
- 朝鮮日報(1928. 4. 30)
- 判決文(1925. 12. 17 大邱覆審法院)
- 判決文(1926. 4. 8 高等法院)
- 書籍領置表(西大門刑務所 : 1934. 4. 17)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495·527面
- 拘留期間 更新決定(京城地方法院 : 1929. 9. 18, 12. 17, 1930. 3. 18)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0卷 755·75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294·29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