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충북 청원 사람이다.
이리농업학교 재학중인 1943년 동교생 장지환(張志煥)·김 구(金九)·호중기(扈仲基)·김직수(金直洙)·서기용(徐基容)·박기춘(朴基春)·강동석(姜東錫)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항일결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고, 동회의 대표로 활약하였다고 한다.
화랑회는 일제식민통치에 대한 항거를 목적한 행동결사로서 무력봉기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행동방략은 우선 총기 및 폭약 등을 탈취하여 무장을 갖춘 후 주재소 및 경찰서를 습격하고, 또 만경교를 폭파함으로써 일제의 수탈통로를 차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 첫 번째 계획으로 폭약 및 총기를 탈취하기 위해 김제군 금구면 오산리에 있는 일인의 광산을 습격하고, 그의 주도아래 동지 20여명이 광산에 잠입하였으나 일경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후 이들은 거사를 재차 계획하는 한편 회원간의 체력 및 무술단련에 힘을 쓰면서 무기확보에도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화랑회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1945년 4월에 전회원이 붙잡혔다. 이때 일제는 구류기간을 연장하면서 어린 소년들에게까지 치안유지법을 적용하여 3개월동안 잔학한 고문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붙잡힌 후 그는 일경의 혹독한 고문에 굴하지 않고 다른 회원에게 모범을 보이면서 끝까지 항거하다가 1945년 7월 12일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이리농림 50년사 120∼123면
- 김제군지 104면
- 아빠의 일기(신호) 1집 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