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일제 말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발언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강만은 공주농업학교 4학년 재학 중인 1941년 7월 26일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인 전북 익산에 갔다. 다음날인 7월 27일 오후 7시경 친구인 영촌량부(榮村亮夫)와 송본길생(松本吉生)과 함께 음식점을 경영하는 송전덕지조(松田德之助) 집에서 친우들에게 '우리들은 조선인이다. 조선인에게는 조선의 혼(魂)이 있다. 일본은 일본이고 우리들과는 관계없다. 조선은 조선이다. 우리들은 일본을 우리 수중에 넣고 장래 서양까지도 손을 뻗쳐야 한다'고 하면서 민족독립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같은 언동으로 일제에 체포된 이강만은 1941년 12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42년 6월 1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全州地方法院:1941.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