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 12. 8.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中央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 중 ‘광주학생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를 부여하라’ 는 내용이 기재된 진정서 (陳情書) 를 작성하여 동교 (同校) 교장 및 총독부 학무국장에게 제출토록 하고 이튿날 9일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여 학우들을 운동장에 집결시킨 후 ‘광주학생 만세’ 등을 고창 (高唱) 한 후 동맹 휴교 (同盟休校) 를 단행케 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년여의 옥고 를 치른 끝에 징역 8월 집행유예 (執行猶豫) 4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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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中央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이은 각지의 동맹휴교에 동참하였다. 심홍택은 동년 12월 8일 강대성(姜大成)·강상덕(姜相德)·황한희(黃翰橲) 등과 함께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광주학생사건에 관련하여 검거된 자를 석방하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여하라" 등을 내용으로 한 진정서 2통을 작성하여 동교 교장 및 총독부 학무국장에게 제출하도록 하였다. 다음날 9일 학생들을 독려해 동교 운동장에 집결시키고 ''광주학생 만세''를 고창하고, 광주학생사건에 동참하여 동맹휴교를 단행하자고 연설하는 등 동맹휴교(同盟休校)를 주동하였다. 심홍택은 이러한 항일투쟁으로 붙잡혀 1년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92面
- 光州學生獨立運動史(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1974) 369·401∼429面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30. 12. 19)
- 東亞日報(1930. 2. 9·9. 15·20·21·10. 17·10. 26·10. 31·11. 1·11. 2·11. 19·11. 20·11. 21·12. 13·12. 16·12. 20·12. 21)
- 朝鮮日報(1930. 11. 20·12. 14·12. 20·12. 21)
- 騎驢隨筆(宋相燾) 400·411·412面
- 光州學生獨立運動史(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1996) 129·130·136面
- 抗日學生民族運動史硏究(鄭世鉉, 1975) 375∼37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