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1913년부터 1917년까지 만주(滿洲)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수학하였던 그는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학우회(學友會) 제3대 토론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졸업 후에는 지령에 따라 길림성(吉林省)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의 연락임무를 비롯하여 군자금 모집 및 노령(露領) 자유시(自由市)로부터 무기구입 임무를 띠고 고국에 입국하여 지하활동을 전개하였다 한다.
1924년부터 1926년 사이에 동아일보(東亞日報) 기자로 활약하며 민족의식을 계도하는데 주력하였으며, 또한 1927년에서 1930년 10월의 기간에 동아일보 이리(裡里)·익산(益山) 지국장으로서 대중계몽과 항일투쟁에 앞장서서 활동했다.
1927년 5월에는 정읍(井邑)에서 개최한 제3회 전북기자 정기대회시 회의록 배포와 연관되어 다시 일경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1927년 6월 신간회(新幹會) 익산지회(益山支會) 창립에 앞서 선포한 격문으로 인하여 집회는 금지당하고 간부 8명이 일경에 검거되었다. 그후 징역 1년형을 받고 공소하여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8년 4월 28일에는 임실청년동맹회관(任實靑年同盟會館)에서 전북기자 정기대회를 개최하였으나 저지당하고 피체되었다. 1931년부터 1946년 사이에는 이리지방청년회(裡里地方靑年會)를 조직하여 청년회관을 건립하고 청년계몽운동에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83·48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755·7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114∼120면
- 동아일보(1926. 4. 29, 1928. 4. 30, 5. 13, 5. 15, 5. 25)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459·52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8·3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294·2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