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1908년 사이 전북 익산(益山)ㆍ김제(金堤) 등지에서 이규홍의진(李圭弘義陣)의 부장(部將)으로 활동하고 1910년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북 익산 출신의 이규홍은 1907년 11월 창의하여 그 휘하에 25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1907년 11월 15일 전북 고산(高山) 가금리(柯琴里)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29명을 사살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그 후 진안(鎭安)ㆍ장수(長水)ㆍ용담(龍潭) 등지에서 활약하다 1908년 4월 21일 일본군의 진압이 가중되면서 전력이 크게 쇠퇴하여 의병진을 해산하였다.
박영오는 이규홍의진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다가 그 부대가 해산한 뒤, 1910년부터 독자적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음력 2월 24일 김시복(金時福) 등과 함께 전북 고산군 서면(西面) 내월곡리(內月谷里) 송병린(宋秉麟)의 집에서 군자금 8원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3월 이수암(李水岩) 등과 함께 전북 임피군(臨陂郡) 남이면(南二面) 신암리(新岩里) 강성재(康成哉)의 집에서 현금 2원과 백미 10승(昇)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4월 7일에는 전북 김제군 공동면(公洞面) 난산리(卵山里)에 거주하는 일본인 사에키 분타로(佐伯文太郞)의 집에서 엽총 1정을 획득하였다.
1910년 4월 26일 익산헌병분견소에서 파견된 헌병수색대에 체포되어, 1910년 5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賊情彙報(1910. 5. 3) 暴徒에 關한 編冊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5. 27)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12.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796, 8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