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5월 전북 익산(益山)ㆍ용안(龍安)에서 김경섭의진(金敬燮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경섭은 전북 임실(任實) 출신으로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의 후군장(後軍將) 및 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하였다. 이석용의진은 1907년 9월 13일 진안읍(鎭安邑)을 점령한 뒤, 그해 11월 17일 장수(長水)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김경섭은 1908년 6월경 이석용의진에 들어가 30명의 동지들과 함께 임실ㆍ남원(南原)ㆍ진안(鎭安)ㆍ장수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했다. 그리고 대표적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 회원을 비롯해 친일 관료, 자위단장, 일본 상인 등 수십 명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박관옥은 김경섭의진에서 1909년 5월 11일 의병 8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익산군 우산면(紆山面) 동하리(東夏里) 이장 강성옥(姜成玉)의 집에서 "인민한테 거둔 세금을 차출하라"고 요구하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2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았다. 1911년 9월 13일 징역 3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全北義兵史(全北鄕土文化硏究會, 1992) 하권 597~598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2.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33~8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