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전북 전주(全州) 고산면(高山面)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원 김진성(金振聲)과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5월경 김한규는 간도의 군정부 특파원으로 입국한 김진성에게 고정식(高貞植)을 소개하였다. 고정식은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말하여 김진성의 공감을 얻었다.
1920년 음력 6월경 김진성은 김한규ㆍ고정식ㆍ이순명(李順明)ㆍ김교우(金敎雨)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에 고정식은 자신의 아버지인 고갑준에게 요구하라고 하면서, 자신이 상해로 망명할 여비까지 부탁하였다. 이들은 8월 14일 전북 군산(群山)에서 완구용 육혈포 두 자루와 회중 전등 한 개를 사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8월 18일 밤 12시경 전주군 고산면 읍내리(邑內里)에서 독립운동자금 9,600여 원을 모집해 서울로 올라왔다.
전주경찰서는 이 사실을 탐문하여 종로경찰서에 급보하였고, 종로경찰서는 8월 22일 김진성ㆍ이순명ㆍ고정식ㆍ김교우를 검거하여 9월 7일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다. 김한규는 검거를 피하여 은닉하던 중, 고정식이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뒤 1922년 3월 2일 자수하였다.
1922년 4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2. 4. 8)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2. 5. 31)
- 受刑人名簿
- 刑事控訴事件簿
- 東亞日報(1920. 9. 10, 1921. 2. 24, 1922. 3. 4)
- 每日申報(1920. 9. 10, 1921. 2. 24)
- 新韓民報(1920. 10.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807~8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