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6년경부터 1928년까지 전북 김제(金堤)에서 김제청년동맹(金堤靑年同盟) 백산지부(白山支部)에 가입하고 농민조합을 조직하는 등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용성은 고향의 부용공립보통학교(芙蓉公立普通學校) 재학 중 안영묵(安榮黙)으로부터 감화를 받아 항일의식을 품게 되었다. 졸업 후 그의 권유로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에 가입하고 한편으로 농민조합을 조직하는 등 왕성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안영묵이 대한독립통의부단원(大韓獨立統義府團員)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됨에 따라 일시 운동을 중단하였다.
1930년경 출옥한 안영묵의 권유에 식민지 현실 모순을 자각하고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 들여 조선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에 노력하였다. 동년 9월 중 당시 백산면(白山面) 상리(上里)에서 야학교를 설립하고 청년 및 아동을 교양하고 있던 친구 정인화(鄭寅樺)와 홍길동(洪吉童)을 만나,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할 것을 권유하였다. 또 1932년 4월 중 익산군(益山郡) 오산면 (五山面) 영만리(永萬里) 송왕식(宋王植)의 집에 가서 신사회 건설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된 김용성은 1933년 1월 16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1933.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