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익산(益山) 사람이다. 전북 고산(高山)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한말 의병운동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특히 1909년 9월부터 10일까지 전개된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에 의해 쇠퇴하여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도 국권회복 의지에 불타는 의병부대의 일부는 만주 노령으로 이주하여 의진을 재편한 후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의진을 해산하고 잠적하는 의병부대가 있는가 하면 일부는 포천(抱川) 연천(漣川)을 비롯한 추가령지구대, 태백산 소백산 등 산간 지대에서 유격전을 수행하면서 항일 투쟁을 계속하여 갔다. 김시복은 이같은 시기에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1910년 2월 24일 박영오(朴永五) 등 4명의 동료 의병과 함께 전북 고산군 서면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였다. 같은 해 4월 7일에도 그는 김제(金堤)군 공동면(公洞面)에 있는 일본인 좌백문태랑(佐伯文太郞)의 집을 습격하여 2명의 일본인 고용인들을 난타하고 총기와 탄약을 노획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0년 12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7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