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35년 1월 경, 의성교회 청년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면려회(靑年勉勵會)를 항일운동 단체로 조직 개편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재인은 1935년 1월 경북 의성교회 목사로 부임한 유재기(劉載奇)가 기독교를 중심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하려는데 적극 찬동하고 동참하기로 하였다. 당시 유재기는 자신이 제창한 3대 규약에 의한 조직 내지 협동조합에 의한 세포조직을 세울 계획이었지만, 일제의 경계가 엄중하였으므로 교회내에 있는 청년면려회를 내부적으로 지도하면서 조직을 키워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재인은 유재기 등과 함께 청년면려회의 개혁을 시도하여, 계사부(稽査部)를 조사부(調査部)로 개칭하고, 농촌부(農村部)·체육부(體育部)를 신설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조사부는 회원의 동정 및 일경의 시찰상황을 탐사·보고하고, 농민부는 농민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체육부는 체육을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며, 종교부는 매월 첫째주에 특별기도회를 가져 독립성취를 기원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민족적 단결로 독립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교회 인사들에게 개혁안의 취지를 설명하여 찬동을 얻은 후 1월말 경 교회 정기총회에서 위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이 일로 유재기 등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39. 5. 1. 大邱覆審法院)
- 刑事事件簿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1226∼1228面
- 義城邑敎會80年史(義城邑敎會, 1988) 54·5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