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942
성명
한자 李在寅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9 훈격 대통령표창
1935년 경북(慶北) 의성군(義城郡) 의성면(義城面)에서 의성교회(義城敎會) 목사(牧師) 유재기(劉載奇)와 함께 조국독립의 방안을 협의하고 교회 소속 청년들의 민족의식(民族意識) 강화를 위해 청년면려회(靑年勉勵會)를 민족주의 조직으로 개편(改編)하는 등 활동하다가 피체(被逮)되어 3개월이상의 옥고(獄苦)를 치르고 기소유예(起訴猶豫)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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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1935년 1월 경, 의성교회 청년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면려회(靑年勉勵會)를 항일운동 단체로 조직 개편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재인은 1935년 1월 경북 의성교회 목사로 부임한 유재기(劉載奇)가 기독교를 중심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하려는데 적극 찬동하고 동참하기로 하였다. 당시 유재기는 자신이 제창한 3대 규약에 의한 조직 내지 협동조합에 의한 세포조직을 세울 계획이었지만, 일제의 경계가 엄중하였으므로 교회내에 있는 청년면려회를 내부적으로 지도하면서 조직을 키워 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재인은 유재기 등과 함께 청년면려회의 개혁을 시도하여, 계사부(稽査部)를 조사부(調査部)로 개칭하고, 농촌부(農村部)·체육부(體育部)를 신설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조사부는 회원의 동정 및 일경의 시찰상황을 탐사·보고하고, 농민부는 농민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며, 체육부는 체육을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며, 종교부는 매월 첫째주에 특별기도회를 가져 독립성취를 기원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여 민족적 단결로 독립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교회 인사들에게 개혁안의 취지를 설명하여 찬동을 얻은 후 1월말 경 교회 정기총회에서 위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그는 이 일로 유재기 등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9. 5. 1. 大邱覆審法院)
  • 刑事事件簿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2輯 1226∼1228面
  • 義城邑敎會80年史(義城邑敎會, 1988) 54·55面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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