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완주(完州) 출신이다.
청일전쟁에 이어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한반도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을사조약, 정미7조약에 이어 1907년 8월 1일 한국군의 강제해산을 강행하였다.
이에 유치복은 더 이상 일제의 만행을 좌시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하고 의병운동의 대열에 투신하였다.
그리하여 삼남의진의 의병대장 유지명(柳志明)의 의진에 입대하였다.
이곳에서 동지 3명과 함께 10월 10일 우북면(紆北面)장암의 이화순(李化順)의 집에서 군자금 30원을 조달하였다.
이어서 송태식(宋泰植)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미력면(美力面) 도내리(道內里)의 최순표(崔順杓)의 집에서 군자금으로 엽전 15전을 조달하였다.
한편 전라도·충청도 일대에서 의병장 유지명·동지 송태식 등과 함께 여러 차례 적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의병대장 유지명의 지시에 따라 의병의 명예를 크게 훼손시킨 윤병오(尹炳五)를 운서면 대치리(雲西面 大峙里)에서 총살하였다. 그것은 윤병오가 의병이라고 자칭하면서 닥치는 대로 강간하는 등 민폐를 끼친 바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909년 금마(金馬)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총살형에 처해져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전북지 권지삼 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704·707·84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26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