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완주(完州) 출신이다.
일찍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경영하고자 획책하여 오던 일제가 청일전쟁에 이어 노일전쟁에 승리하자 한반도 내에서의 국제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어 정치적·경제적 침략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의분을 느낀 유연청은 일제의 야욕을 분쇄하고자 의병운동 전개를 모색하여 왔다.
1906년 10월경 유연청은 유명석(柳命錫)·유준석(柳俊石) 등과 더불어 유씨 일문 9명이 의병이 되어 익산(益山) 군내에서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다.
1907년 10월 유현석(柳炫錫) 등 7명과 더불어 익산군 여산면 원수리(礪山面 源水里) 노상에서, 1907년 10월에는 한흥수(韓興洙)의 집에서, 그리고 1906년 10월과 1907년 5월에 이봉승(李奉承)의 집에서 2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후 의진이 해산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던 중 이러한 사실들이 알려져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전주(全州)에서 1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판결문 (1917.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