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영주(榮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9일의 풍기읍(豊基邑)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4월 3일 오후 2시, 그의 집에서 안용호(安容鎬)·남영진(南永鎭) 등과 만나, 4월 9일의 풍기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준비를 하였다.
4월 9일 아침 일찍, 그는 안용호·남영진과 함께 태극기를 감추어 가지고 시장에 나갔다. 오후 3시 30분경, 6·7천여명의 장꾼이 모이자, 그는 장꾼이 가장 많은 쌀 시장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긴급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해 해산되었으며, 그는 체포되었다. 결국 이해 4월 19일 대구(大邱)지방법원 안동(安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71·1372·137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16·4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