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경북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 재학 중 1941년 상지회라는 서클활동을 하다가 명성회와 연합하여 1943년 가을 비밀모임을 가지면서 동지를 규합해 나갔다. 이들은 목성동(木城洞)의 황병기 하숙방, 낙동강 제방, 동부동 서정인(徐正寅, 10기)의 집 등에서 모임을 가지고 마침내 1943년 10월 말 학생비밀결사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을 결성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은 계속 동지를 규합하여 그 인원이 50여 명에 달했으며, 무장투쟁을 방략으로 삼았던 독립군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그들의 계획은 ① 안동농림학교 무기고에 있는 총을 가지고 ② 경찰서·헌병대를 접수하여 무장하고 ③ 일본인들을 제압하여 ④ 철도 통신망을 파괴한 후 ⑤ 의성으로 진격하여 ⑥ 대구에서 오는 일본군을 방어한다는 것이었다.
조선회복연구단에서 활동하던 중이던 그는 1945년 3월 10일 거사를 계획하였으나 10기생인 강형원·현필기 등이 순찰 중이던 일본경찰에 체포된 후 가택수색에서 조선회복연구단원 명부가 발견되어 거사일 이전에 전부 체포되어 안동형무소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대구경북 항일독립운동사(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 303∼307면
- 安東版獨立史(金乙東 編, 1985) 343·369면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