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전정석은 1930년 4월 23일 경북 영주(榮州)에서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원(榮州支會員)으로 영주 장날 300여 명의 군중에게 격문을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동년 4월 12일 이석근(李石根)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격문을 작성하고 거사를 협의하면서 시작되었다. 4월 17일 영주읍내 순흥여관(順興旅館)에서 신간회 영주지회 등사판을 이용하여 격문 3,000매를 인쇄하고, 표어를 제작하였다. 다시 4월 21일 동군(同郡) 단산면(丹山面) 사천리(沙川里) 여인숙에서 격문을 작성하였다. 격문은 ‘일본 제국주의 독재정치를 박멸하자, 조선총독 포악정치를 박멸하자, 우리가 약소민족을 해방시키자’ 등의 민족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전정석은 만세운동 뒤 일경의 수사망을 피해 은신하였으나 5월 4일 영주경찰서에 체포되어 1930년 6월 6일 대구지방법원과 1930년 7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30. 6. 6)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朝鮮日報(1930. 5. 15·5. 19, 6. 5)
- 名籍表(大邱刑務所)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30. 7. 15)
- 中外日報(1930. 5. 8·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