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4월 9일 영주군 풍기면(豊基面) 풍기시장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안용호(安容鎬)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는 것을 보고 풍기에서도 만세시위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4월 2일 최성원(崔盛源)·남영진(南永鎭) 등을 규합하고 4월 9일 풍기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합의하였다. 풍기시장은 인근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곳이기 때문에 시위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4월 9일, 이들은 준비된 태극기를 감추고 아침 일찍 시장으로 잠입하여 장꾼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렸다. 오후 3시 30분경 이들은 장꾼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쌀 시장에서 숨겨 가지고 간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군중들도 여기에 호응하여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 3명은 곧 일본 헌병에 붙잡혀 주재소로 끌려갔다.
이때 이들의 계획에 적극 찬동하고 이들과 함께 행동을 같이 하기로 한 이화백 등은 백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이들 3명이 끌려 간 주재소 달려가 그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일본 헌병에 붙잡혔으며, 이 일로 1919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봉현동산(봉현국민학교 총동창회, 1986) 20·22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17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71∼137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