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교덕은 1915년 8월경, 박제선(朴齊璿)·권영목(權寧睦)·유명수(柳明秀)·정응봉(鄭應鳳)과 함께 경북 영주군 영주시장에 설립된 대동상점(大同商店) 경영에 참여하면서 만주지역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하여 1917년 12월 24일, 서울로 올라와 동지들과 1918년 3월경 만주 봉천에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수행할 것을 협의하고 권영목과 유명수에게 상점 경영의 수익금 700여 원을 주고 길림으로 가서 만주 이주 준비와 군사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이 사건으로 1918년 3월경 체포된 이교덕은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사기횡령으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징역 4월을 받았으나, 동년 6월 복심법원에서 무죄로 석방되기까지 3개월 여 옥고를 치렀다.
1924년 1월 18일, 중국 북경 동서공우(東西公寓)에서 국민대표회의에 군정서(軍政署) 대표로 참가한 이중호(李重浩)·정인교(鄭仁敎) 외 2명과 함께 머물던 중, 중국 관헌에 의해 ‘국민대표회의 선포문’과 동지들 간의 왕복 문서 등을 압수당하는 한편 체포되어 취조를 받고 이튿날 석방되었다.
1929년 4월부터 최창식(崔昌植)이 경영하는 상해의 인쇄소에서 주정모(朱正矛, 일명 金慶先)·조태희(趙泰羲)와 함께 사회주의 관련 문건을 인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30년 4월 28일 프랑스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5월 21일 서울로 압송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대구 경북 항일독립운동사(광복회 대구경북연합지부) 264~265면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264~265면
- 支那官憲의 不逞鮮人 拘留 및 不穩文書 押收에 관한 件(1924. 1.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3)
- 慶尙北道警察部治安槪要 264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20 임정편 ⅴ 117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3권 413~414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8. 5. 3)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8. 6. 18)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檢事局)
- 在上海 不穩行動者 崔昌植 等 取調狀況에 關한 件(1930. 6. 11) 思想에 關한 情報綴(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