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3일 오후 2시경에 경북 영주군(榮州郡) 봉현면(奉峴面) 대촌리(大村里) 최성원(崔盛源)의 집에서 남영진(南永鎭)과 같이 4월 9일 풍기(豊基)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태극기를 만들었다. 4월 9일 오후 3시경 풍기(豊基)장터에서 3인이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운집한 많은 군중이 이에 호응함으로써 독립만세시위가 시작되어 주동자로 붙잡혔다.
동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71∼13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