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신간회(新幹會) 영주지회 선전부 위원, 영주청년동맹원, 영주농민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중인 1930년 3월 16일 이상을(李相乙)과 함께 자기 집에서 「만천하 피압박 대중에게 격(檄)하노라」라는 제목 아래,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획득하자」, 「모든 악법을 철폐하라」, 「광주학생사건 피고들의 무죄를 주장하라」,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조선총독의 폭압정치에 항쟁하자」, 「투옥된 동지를 탈환하자」는 등의 구호가 담긴 격문을 작성하였다.
그리하여 영주청년동맹 회관에서 등사판으로 762매를 인쇄해 놓고서, 영주 장날인 같은 달 24일 정오에 시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일제히 격문을 살포하고 만세를 고창함으로써 군중시위를 유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일경에 발각되어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였으며 그는 붙잡혀 동년 4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30. 4. 23 대구지방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776∼7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