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만주일대에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려던 제2차 유림단 사건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 2차 유림단 사건은 유림계 독립운동 지도자였던 김창숙(金昌淑)이 1925년 3월부터 7월에 이르는 3개월간 동지 송영호(宋永祜)·김화식(金華植)·이봉로(李鳳魯) 등과 만주·내몽고 일대에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무장독립운동세력 양성을 위해 군자금 모집 실행 방안을 강구하다 일어났다.
김창숙은 1926년 1월 상순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대구에 와서 김화식과 송영호 등을 각지에 보내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홍묵(洪默)·이동흠(李棟欽)·이종흠(李棕欽)·김재식(金재植)·이영로(李永魯)·김헌식(金憲植)등에게 군자금 모집을 지시하였다. 이때 송영호는 김창숙의 지시로 영주군 영주면 영주리에 살던 선생을 찾아와 군자금 모금을 논의하였다. 이에 박제형은 1926년 1월 중에 영주군 동면에 거주하던 부호 정원섭과 교섭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려 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에도 서신전달과 면담 등 다각적인 방법으로 정원섭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려 하였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그는 1926년 3월 3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 후 1926년 5월 24일 구류 처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인 1927년 8월 29일 신간회 영주지회 간사, 1928년 3월 30일에는 신간회 영주지회 회장이 되어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事件簿(大邱地方法院, 1926)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284·286면
- 東亞日報(1927. 2. 4)
- 朝鮮日報(1927. 9. 3, 1928. 3. 30, 1929. 1. 20)
- 豫審終決決定書(大邱地方法院, 1927. 1. 2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권 312·3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