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경술국치를 당하여 망국의 한을 품고 있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를 국권회복의 호기로 파악하고 동지결속과 자금조달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그는 권영목(權寧睦)·유명수(柳明秀)·정응봉(鄭應鳳)·이교덕(李敎悳) 등과 더불어 1915년 8월 영주 시장에 대동상점(大同商店)이라는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이를 독립운동의 자금조달과 밀의장소로 삼는 한편 기회를 포착하여 만주(滿洲)로 이주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김노향(金魯鄕)을 새로이 동지로 포섭하고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여일간 만주 봉천(奉天)지방을 답사하였다. 귀국 후 그는 1918년 3월까지 만주 이주를 결행하기로 하고 상점을 폐쇄하였다. 동년 12월 20일 경성 남문여관에서 권영목·김노향·조재하(趙在夏)·권영만(權寧萬)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사령(司令) 박상진(朴尙鎭) 등과 더불어 회합을 갖고 만주 이주와 군대교육의 준비를 위하여 권영목을 만주로 파견하여 중국 길림독군(吉林督軍) 맹사원(孟思遠)과 협의토록 하였다. 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유명수는 대동상점에 보관 중이던 현금 700여원을 확보하고, 권영목은 권상수(權相洙)·송주찬(宋柱燦) 등으로 하여금 지방 자산가로부터 수차에 걸쳐 1만여원을 모금케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영주헌병분견소에 발각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이 일경에 붙잡히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1918년 3월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사기횡령 혐의로 검사국에 송치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찰국) 267면 ·고등경찰요사 2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