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순흥(順興) 사람이다.
의병장으로 경북 순흥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김휘정은 1895년 8월 일제가 경복궁에 침입하여 국모를 시해하였다는 변보(變報)를 전해 듣고 비분강개하였는데, 이어 일제와 친일정권에 의한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단발령과 복제개혁까지 강행되자 그 분노는 폭발하여 토역복수(討逆復讐)를 부르짖고 향리인 순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순흥지방에서 활동하는 한편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의진과 연합부대를 형성하여 항전하였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전투로 말미암아 군사가 흩어지고 병기가 부족하여 그를 수습하기 위해 험지에 자리잡고 있을 때, 적들이 쳐들어와 그를 체포하려고 하였다. 이 때 그의 아들 김건규(金建奎)가 자청하여 잡혀가 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여러 전투에서의 부상과 아들의 옥살이로 인한 충격 때문에 병들어 순국하였다. 이 때 유인석 의병장은 글을 보내어 위문하기를 "아버지는 나라를 위하여 천고의 대의를 일으키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죽음을 대신하였으니, 이는 효도에 죽도 또 대의에 죽은 것이라. 모두 천하 후세에 길이 칭찬받을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함께 연합전투를 한 이강년 의병장도 그가 병으로 죽은 것을 한 팔을 잃은 것같이 애석하게 여겼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위문하기를 "아들은 당연히 죽을 일에 죽었으니 아버지도 죽을 일에 죽은 것이다. 한 집안에 효도와 의리가 어찌 그리 혁혁하오. 원컨대 시종일관하여 국사에 힘을 다하도록 합시다"라고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286·2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