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영주(榮州) 사람이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乙巳條約)의 강제 체결로 한국을 준식민지로 편입시킨 일제는 광무황제가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밀사(密使)를 파견하여 을사조약의 무효를 세계 열강들에게 호소하자, 광무황제가 한국의 식민지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하에 1907년 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킴으로써 한국을 완전 식민지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해산당한 한국 군인들이 반일 투쟁의 대열에 가담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전쟁을 전개하자, 일제는 이른바 '폭도(暴徒) 진압'이라는 명목으로 일본군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펼쳤다. 그리하여 1909년경 의병세력이 서서히 약화·분산되어 가자, 1910년 8월 이른바 '한일합방조약(韓日合邦條約)'을 늑결함으로써 한국을 일제의 식민지로 완전 편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02년 당시 대한제국 혜민원(惠民院) 주사(主事)직을 제수받은 바 있던 그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소식을 전해 듣고 통분하여 자결을 기도하며 식음을 전폐하였으나 노모(老母)의 간곡한 만류로 단식을 중지하였다. 그러나 1912년 노모가 사망하자 3년상을 마치고, 1915년 2월 마침내 자만시(自輓詩) 한 수를 남겨놓고 자결 순국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침략에 대해 저항 의지를 표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만사(필사본, 작성년대 미상)
- 대관재문집 전권 혜민원 주사 어야김공행장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237·238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23·224면
- 제문(필사본, 작성년대 미상)